회피형 동료와 부드럽게 관계 맺는 법*에 대해, 심리학적 이해와 현실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유독 거리를 두는 동료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친근하게 인사해도 반응이 적고, 대화에 끼어들기보단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 이럴 때 우리는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 사람의 반응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회피형’이라는 성향은 단지 그 사람이 감정 표현에 서툴거나,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기 위한 태도와 접근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감정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 조용한 사람
우리는 흔히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에게 친근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무뚝뚝하고 조용한 사람, 다가가도 선을 긋는 듯한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거절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되죠. 특히 일터라는 좁고 복잡한 공간에서는, 이런 정서적 거리감이 금세 오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성급히 ‘냉정하다’거나 ‘무심하다’고 단정짓기 전에,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다루는 사람들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피형은 흔히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유형 중 하나입니다. 가까워질수록 불편함을 느끼고, 깊은 관계보다는 예측 가능한 거리감을 선호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사실 감정이 없거나 무뎌서가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조심스럽게 접어두고 살아온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 시절, 울거나 기대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경험, 스스로를 통제해야만 했던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감정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순간, 마치 자신을 잃을 것 같은 불안감이 올라오고, 자연스럽게 ‘거리두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회피형에게 다정한 말, 위로의 손길, 감정적인 질문은 그 자체가 '압박'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정함보다 안정감, 감정 공유보다 일관된 태도에서 신뢰를 느낍니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필요한 만큼만 관계에 들어오는 것— 이게 그들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자칫 그 조용함을 "내가 싫은가 봐" "쌀쌀맞다"라고 오해하지만, 그건 단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일 뿐입니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속으로 오래 품고 정리하는 타입. 마음을 쉽게 열지 않지만, 열었다면 오래 지키는 사람.
그들에게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식은 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조용히 열어주는 것입니다. ‘왜 말 안 해?’가 아니라, ‘괜찮아, 네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게’라는 태도.
그리고 이 기다림은 마냥 수동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들 앞에서 조급하지 않고, 내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그냥 ‘있는 그대로’ 곁에 있어주는 것— 그 태도가 가장 강력한 신뢰로 바뀔 수 있습니다.
회피형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 조용한 사람입니다. 그 조용함 속에도 많은 생각과 감정이 흐르고 있으며, 누군가 그 흐름을 존중해줄 때, 그들은 비로소 서서히 물꼬를 트기 시작합니다.
감정에 말 걸기보다, 감정을 위한 공간 만들기
우리는 흔히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선 많이 말하고, 자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회피형 동료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관계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다룰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즉각적인 감정 표현이나 빠른 반응을 요구받을 때, 그들은 그 요구에 맞추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거리를 둡니다.
그래서 그들이 조용하고 반응이 적다고 해서 냉담하거나 무성의한 사람이라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저 자기 속도를 지키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런 사람들과는 ‘감정에 말을 거는 것’보다, ‘감정이 흐를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함께 있어도 말 없이 편안한 분위기, 묻지 않아도 신뢰할 수 있는 태도, 그런 무언의 안정감이 회피형에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예를 들어, 그들에게 일을 부탁할 때 “이렇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어느 쪽이 편하신가요?”라고 말해보세요.
지시보다 선택지를 주는 것, 그것이 회피형이 스스로의 공간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피드백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직접적인 코멘트를 주기보다는 조용한 시간에, 따뜻한 어조로 1:1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에게는 체면과 자존심을 존중받는 경험이 그 어떤 격려보다 강한 연결감을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과잉된 친절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리듬을 존중해주는 사람에게 더 큰 신뢰를 느낍니다.
회피형은 말보다 공기를 읽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분위기의 온도, 말의 속도, 시선의 무게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의 결’을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아무 말 없이도 따뜻한 존재감을 유지할 때, 그들은 스스로 조금씩 마음을 여는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관계가 깊어지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감정에 말을 걸기보다, 그 감정이 스스로 말을 꺼낼 수 있도록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기다리는 기술, 말하지 않는 공감, 그리고 여백을 채우지 않으려는 용기. 그것이 회피형과의 관계를 단단하게 이어주는 다리가 됩니다.
공감은 말보다 ‘여백을 주는 태도’에서
공감은 때로 말보다 침묵을 허용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회피형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깊이 느끼더라도, 그것을 언어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왜 아무 말도 안 해?”라고 재촉하기보다는, 묵묵히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엽니다.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신뢰는 바로 그 느림 속에서 피어납니다.
‘말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쉽게 꺼내지 않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태도가, 어른의 공감입니다.
기다림은 무력함이 아니라 선택이며, 조급하지 않은 배려입니다.
상대의 속도에 맞춘 존중, 그리고 나의 중심 지키기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회피형 동료를 만났을 때,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내가 내 중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지나친 배려도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무관심은 관계를 끊어놓습니다. ‘네가 준비될 때까지 나는 여기 있을게.’ 그 말 없이도 전해지는 기운을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그 여유와 존중이 상대에게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내 감정도 소중히 여기며, 타인의 방식도 함께 이해할 때, 진짜 건강한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말보다 공기, 다가감보다 기다림
회피형 동료와의 관계는 우리가 ‘변화시켜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방식, 그리고 나의 방식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과 깊게 연결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서로의 리듬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말보다 공기, 다가감보다 기다림, 반응보다 일관성. 그런 것들이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주고, 서로를 오해하지 않고 함께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마음의 문은 억지로 여는 것이 아니라, 두드리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사람 앞에서 열립니다.